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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ck(국내주식)/Stock_주식 고수 투자법 모음

[재야고수 특집] 프로악 하동호

by 좀thethethe 2019.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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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11년간 하루도 쉰 적 없어… 
‘2년 후’ 은퇴 목표 욕심 버리는 것이 수익 지키는 유일한 길

단기 수급 매매, 호가창만 보면 안돼
거래원·거래동향 함께 파악해야
요즘 같은 상승장에선 스윙거래가 유리

외국인이 이끈 상승장 당분간 계속될 것
정책 수혜받는 산업 중 
‘1등 종목’에 투자를 코스피 대 코스닥 비율 7 대 3


“주식 투자에 ‘운(運)’이라는 건 없습니다. 손실이 났을 때 ‘운이 나빠서’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주식을 놓아야 합니다. ‘운’이 나빠서라는 건 나는 잘했는데 다른 뭔가가 나를 방해했다는 의미지요. 아닙니다. 주식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손실이 난 것일 뿐이지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주식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공부하고 노력해야 이 어려운 주식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로악(ProAc)’이라는 필명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재야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소위 가장 신선하고 ‘핫(hot)’한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재야고수 하동호(42)씨와 대화 중 나온 이야기다.
   
    하씨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등장해 지금까지도 최고의 단타 고수로 불리고 있는 ‘여수고래’ 박현상, ‘젊은 부자’ 김동일씨 등의 뒤를 이으며 등장한 재야 데이트레이더(day trader)계의 떠오르는 스타다.
   
   그는 언론은 물론 제도권 증권사들의 특강이나 초청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제도권 증권사 관계자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인터뷰와 강의 요청을 하고 있지만 번번이 퇴짜 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업 투자를 시작한 후 11년간 세상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재야 고수 ‘프로악’ 하동호씨를 만나 그의 주식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로악 스피커 사기 위해 주식 시작
   
   하씨는 2004년 이후 월 단위 수익률을 20% 이상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재야 주식 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단타 고수 중 최고의 관리 능력을 가진 투자자’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던 그가 2008년 이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맥없이 폭락하던 시장에서도 월 평균 20%대의 수익률을 유지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며 평범한 개인투자자들에게까지 ‘프로악’이라는 이름이 주식시장 최고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게 됐다.
   
   현재 그는 하루 거래 약정만 약 500억원, 주식거래를 위한 수수료와 세금만 하루 약 250만원을 낼 만큼 왕성한 거래를 하고 있다.
   
   하씨는 전형적인 데이트레이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보통 데이트레이더들과 다르게 평가받고 있는 것은 일(日) 1%, 월 20%라는 자신의 목표 수익률을 꾸준히 지켜내는 놀라운 성과와 함께, 초치기·분치기라 불릴 만큼 짧은 순간 사고파는 스캘핑(scalping) 매매는 물론, 단타 매매이기는 하지만 2~5일 정도의 보유 기간을 두고 주가의 등락에 맞춰 주식을 사고파는 스윙 거래(swing trading)에 이르기까지 단기 매매에 관해서만큼은 특정 기법을 가리지 않고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Home Trading System)상의 호가창에 표시되는 매수와 매도의 움직임 변화를 포착해 거래하는 수급 매매와 재료(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문과 뉴스, 정책 등) 매매를 통한 스윙 거래에 있어서는 최근 등장한 재야 고수들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식 인생은 필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프로악’과 함께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취미 생활이 주식을 하게 했다”며 주식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로악’은 영국의 스피커 브랜드입니다. 취미가 오디오로 음악 듣는 거였어요. 오디오에 관심이 많았지요. 1997년인가 오디오 스피커를 바꾸고 싶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게 중고로 팔면 1500만원쯤 받을 수 있었지요. 근데 사고 싶은 프로악 스피커가 2000만원이었어요. 500만원이 부족했지요. 그때 친구한테 ‘야, 돈이 좀 부족하다’고 했더니 이놈이 ‘요즘 주식 잠깐 했다 빼면 그 정도 돈은 금방 번다’며 스피커 판 1500만원으로 주식을 하라는 겁니다. ‘주식하면 돈 벌 수 있어? 와’하는 생각에 덥석 주식을 샀던 게 제 첫 주식입니다.”
   
   당시만 해도 그는 주식이 뭔지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때 산 주식이 나름 우량주라던 ㈜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였어요. 5000원 주고 샀는데 IMF(외환위기) 맞고, 대우 무너지면서 몇 번 감자까지 하더니 결국엔 600원인가 주고 팔았어요. 1500만원이 채 200만원도 안 남아 있더군요. 이후부터 ‘프로악’ 스피커를 꼭 사겠다는 일념으로 필명도 ‘프로악’으로 지은 겁니다. 하하하.”
    
   손대는 주식마다 실패, 3억원 빚더미에
   
   그의 첫 주식 투자는 그렇게 깡통으로 끝났다. 이때만 해도 그는 주식 거래를 직업으로 하는 전업투자자가 아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젊은 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전업투자자로 변신한 것은 2000년 1월부터다. 외환위기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전업투자자였다. 
   
   “1998년에 형과 함께 작은 건설사업을 했습니다. 경기도 용인에서 빌라를 지어 분양했는데 하루아침에 망해버렸습니다. 외환위기를 제대로 맞은 거지요. 빌라 짓고, 분양하기 위해 투자했던 돈의 10분의 1도 못 건졌어요. 그나마도 은행 이자 내고 나니 손에 쥘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 500만원 정도 있었을까요. 1999년에 사업을 정리하고 한동안 제 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딱히 출중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안전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그때 떠오른 게 망하긴 했었지만 ‘주식에 대한 기억’이었죠. 사실 그 상황에서 제게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어요.”
   
   그의 전업 투자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IT버블로 코스닥 시장 여기저기서 수십, 수백 퍼센트의 수익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정보와 매매 노하우, 이론적 배경이 약해 ‘감’과 ‘운’에 맡긴 매매에 의존했던 그였기에 수익보단 손실, 성공보단 실패가 더 익숙한 생활이 이어졌다. 종잣돈 500만원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사라졌다.
   
    “손대는 주식마다 실패했어요.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주식 살 돈을 만들기도 했고, 그 카드 값을 못 갚아 돌려막기도 했지요. 악순환에 빠진 거죠. 어느 순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는 때가 오더군요. 계좌를 살펴보니 깡통이 문제가 아니라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2억~3억원의 빚이 쌓여 있었어요. ‘이제 죽어야겠다’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내에게 모든 상황을 털어놨다. 그의 말을 들은 아내가 집을 팔았다. 빚을 갚고 월세 생활을 시작했다. “주식을 하는 한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한동안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았었다”는 그의 말에서 전업투자자로 사는 삶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로운 것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깨지는 삶에 익숙한’ 하동호의 인생에 반전이 찾아왔다. 전업 투자 3년차에 접어들던 2002년 하반기부터 크지는 않지만 용돈 정도는 벌기 시작하더니 곧 월세를 책임질 만큼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날, 단 두 시간 만에 80%의 수익률을 올리며 5000만원이던 투자 원금을 4억원으로 불린 매매는 그의 전업 투자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당시 80%의 수익률에 대해 전형적인 수급 매매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
   
   “탄핵과는 무관한 멀쩡한 기업들이 탄핵 소식에 순간적으로 하한가를 갔습니다. 우량회사들이 ‘정국 불안’과 ‘수급 불안’이라는 아주 단순한 불확실성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폭락한 거지요. 정국 불안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지만, 우량한 기업에 발생한 수급 불안은 시장이 이성을 찾는 순간 정상화될 수밖에 없지요. 쇼크 상태에서 투매를 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재매입에 나서는,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란 게 채 한두 시간이 안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장 전체가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현대자동차, 동국제강 등 낙폭 과대 대형종목을 발굴해 4~5일간 투자한 스윙매매로 그는 다시 한번 수익을 만들어낸다. 이즈음부터 그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업료 내고 배운 ‘경험의 힘’
   
   그는 특별히 주식을 이론적으로 배운 적도, 주식관련 일을 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수익을 내는 이유를 ‘경험의 힘’으로 설명했다. 
   
   “수없이 깨지며 엄청난 손실액이라는 수업료에 괴로워했던 ‘경험의 힘’ 외에는 딱히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못할 만큼 주식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깨지기만 했던 3년 동안 장이 열리는 시간이라면 단 1초도 빼지 않고 HTS상의 호가창을 들여다보며 작은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노력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어느 순간부터 HTS상의 호가창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순간적인 움직임은 주식 이론을 많이 알고, 차트 분석에 아무리 능해도 포착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요. 정말 순간이니까요. 이게 보인다는 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없이 깨지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몸으로 익혀버린 ‘경험의 힘’인 거지요. 물론 ‘경험의 힘’이 힘다운 힘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는 철저히 수급 변화에 대응하는 투자를 한다. 매수와 매도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단기 투자자 대부분이 차트에 의존합니다. 물론 차트의 움직임으로 시장을 예측해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차트란 건 현재와 미래가 아닌 기본적으로 과거의 주가 변화를 정리한 표일 뿐입니다. 투자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이 투자를 결정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는 단기 투자만큼은 과거의 데이터나 미래 예측 아닌 지금 현재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상호작용, 즉 수급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의 타이밍을 어떻게 잡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통상 일반 투자자들이 수급 매매를 할 때 범하는 가장 큰 오류가 ‘호가창’에만 의존한다는 거지요. 사고파는 수량과 가격만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사고,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호가창의 움직임 이상으로 중요한 게 거래원창을 통해 어떤 외국인과 기관이 매매 주문을 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 이들이 언제, 얼마나 분산해 물량을 매집하고 있는지 ‘거래동향’ 역시 끊임없이 파악해야 합니다. 이들을 파악할 수 있어야 그날그날 안정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종목 파악이 가능합니다.”
   
   그는 “거래원이 특히 중요하다”며 “기관보다는 외국인의 움직임, 매매패턴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대량 거래를 하는 외국인의 특성상 그들의 매매로 그날 하루 수급이 결정되는 종목들이 많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은 오전 9시부터 20여분간 하루 동안 자신들이 공략할 종목들을 결정합니다. 즉 이 시간 외국인들이 사고판 종목의 움직임이 투자의 키가 되는 것이지요. 통상 외국인들은 하나 혹은 3개 이내 소수의 거래원을 이용하고, 한번에 폭탄매집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보통 2~3일에 걸쳐, 하루에도 몇 번씩 매집을 합니다. 그렇게 2~3일 주가를 끌어올린 후 2~3일을 쉽니다. 이때 올랐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럼 그 타이밍에 다시 2~3일간 첫 매집 때와 똑같은 패턴으로 매집을 시작합니다. 이 두 번째 매집을 시작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매입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수급매매입니다.”
   
   그는 수급 매매 시에는 철저히 2~3% 수익률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 이상 상승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했다. 목표를 낮게 잡는 것과 주식 매입 후 최대한 빨리 팔 수 있는 능력이 리스크관리와 직결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또 수급을 이용한 단기매매는 대형주 위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살 때만큼이나 수월하게 팔기 위해서다.
   
    
   10%의 실력과 90%의 노력
   
   하지만 장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HTS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수급매매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대신 일반투자자 역시 충분히 해볼 수 있는 투자가 ‘스윙매매’라고 했다.
   
   “스윙거래는 주로 뉴스와 정부 정책을 이용한 재료에 의한 매매이지요. HTS 뉴스창과 각종 언론사 사이트, 신문과 잡지, 정부 정책지를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수익을 내는 것은 10% 실력과 90% 노력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단, 수없이 쏟아지는 뉴스 중 가치 있는 뉴스인지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겠지요.”
   
   그는 정책과 뉴스에 의한 상승은 일반적으로 하루 반짝 상승으로 끝나기보다 통상 며칠에 걸쳐 상승한다고 했다. 특히 재료의 가치에 따라 폭등을 가져 오기도 한다고 했다. “4대강, 태양광, 현대건설 관련 주식들이 최근 등장한 대표적인 재료 매매입니다. 정책이나 이슈가 나오기 직전 2~3일 폭등을 하지요. 이 타이밍이 스윙거래를 위한 절호의 기회입니다. 타이밍을 잡는 능력을 갖기까지 ‘경험의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는 고수든 평범한 개인 투자자든 크게 벌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 수익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무릎에서 사 어깨에서 팔면 늦습니다. 허리에서 파세요. 어깨까지 갈 걸 알 정도면 그 사람 부자됩니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이 (주가가) 떨어졌을 때 손절매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주가가) 올랐을 때 이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투자에 앞서 항상 기억해야 하는 건 주식을 판 후 계좌에 돈이 들어왔을 때라야 비로소 ‘수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동호씨는 한국 시장에 대해 외국인이 끌어올린 시장이기에 그들이 이익을 실현하고 나가기 전까지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에게 투자 방향을 묻자 “정부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산업 위주의 투자가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태양광이나 풍력산업이 올해는 정책의 수혜를 크게 받을 듯합니다. 특히 똑같이 그린(green), 차세대 에너지 정책 이슈를 가졌음에도 지난해 태양광은 상승했고, 풍력은 오르지 못했지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올해 대통령께서 신년사에 풍력산업을 직접 언급할 만큼 의지를 보였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시장을 만들 가능성이 큰 대목이지요. 그런 영향인지 대통령의 신년사 직후 3일간 풍력 관련 종목이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장이 먼저 반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2~3년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올 한 해 정도는 풍력에 관심을 가져 볼 만합니다.” 
   
    
   “이젠 가족과 삶에 투자하고 싶어”
   
   그는 개인투자자들의 경우 단 1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할지라도 반드시 시장과 산업에 분산투자하라고 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7:3 정도 분산하고 금융, 조선, 자동차, IT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 위주로, 그리고 반드시 그 산업의 1등 종목과 외국인들이 주로 매집하는 종목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투자하십시오.”
   
   인터뷰 말미 그는 “2년 후 주식시장을 떠나는 것이 목표”라는 다소 의외의 말을 했다. 너무 지쳤다는 것이다. 전업 투자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친구가 죽어 장례식을 치러야 했던 하루와 몸이 아파 오전 장을 마치고 오후 장 시간에 병원을 가며 반나절을 쉬어본 것 외에는 쉰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 11년 거래한 종목의 차트를 그리라고 하면 복사하듯 그려낼 수 있지만 인생을 그리라면 백지를 낼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11년은 주식 외에는 아무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아들 녀석마저 없었다면 정말 지난 11년은 하얀 백지입니다. 새벽 6시에 사무실에 나가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와 잠을 자고 다시 새벽 6시에 사무실로 향했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지난해 12월부터 그래도 주말에는 사무실에 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보냅니다. 아들도, 아내도 너무 좋아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이런 재미가 사람 사는 재미였습니다. 아마 완전히 주식에서 손을 놓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매매를 할 겁니다. 이 목표를 위해 별도의 스윙계좌도 운영하고, 장기투자계획도 짜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 말 아들과 몰디브 여행을 약속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오는 날인 1월 17일 몰디브로 떠난다고 했다. 그의 인생 첫 휴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 휴가가 이제껏 해왔던 투자 중 최고의 투자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출처: 주간 조선] 2011년 1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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