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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몽상_끄적이기

<지란지교를 꿈꾸며>

by 좀thethethe 2018.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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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동네엔 이철호 한의원이있었다. 벌써 수십년도 더 전에 말이다.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가다 경암 이철호 문학관이란 간판이 보이길래 검색했더니 이분은 한의학자이자 문인으로 활동하셨다 한다.

문득 내가 군대있을 때 친구가 보내준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글귀가 생각나 적어본다. 아직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친구만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글귀처럼 허름함에도 소소하게 소중하게 만날 친구를 누구나 꼭 만들었음 하네요.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수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옷을 갈아입지않고 김치냄새가좀 나더라도 흉보지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 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수있고 악의없이 남의얘기를주고받고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아내나 남편 제형제나 제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수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생길필요가없고 수수한멋을알고 증후한 몸가짐을 할수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수있을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나서,얼마의시간이 흘러 내가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표현으로 충고를 아까지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사람을 사랑하고싶지는 않다 많은사람과 사귀기도 원치않는다.나의일생에 한두사람과끊어지지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나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끼니와 잠을아껴 될수록 많은곳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많은 구경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것은 거의없다 만약 내가 한두곳 한두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싶지 않듯이 나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출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를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친구도 성현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살고싶고 내친구도 재미나 위안을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걸 내가더 먹고싶을테고,내가더 예뻐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마음을 지울 줄도 알것이다.때로는 얼음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수 잇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수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지는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위해 비록 진실이라도 타인을 팔지는 않을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수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않고 자기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기를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애정은 우정과도같으며 우리의 우정또한 애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생각할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낀창문을 열다가 가을흰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보고싶어지며 그도 그럴때 나를찾을것이다.
 
그는때로 울고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수있는 눈물과 추억이있을것이다 우리에겐 다시젊어질수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일에 초조하지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않게 가지는 멋보다는 풍기는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때는 농부처럼 먹을줄알며 스테이크를자를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마실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위해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을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살아도 향기를 팔지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모습을 잃지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않으며 특별히 한두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글은 못쓰더라도 쓰는일을 택한것에 후회하지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길을가다가 한묶음의 꽃을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나를 주책이라고 나무라지않으며 건널목이아닌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교양을 비웃지않을게다 나또한 그의눈에 눈꼽이끼더라도 이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손은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되리라  같은날 또는 다른날이라도 .
 
세월이흐르거든 묻힌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이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만나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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